연구노트 (1) 시작? 그간의 공부 정리

일기장에 오랜만에 들어왔다. 다른 삶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문득 내가 하고 있는 공부를 시간순으로 정리해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이 아니어도 좋다,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면 나중에 돌이켜보았을 때 한바탕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재미 있는 생각이다 싶어서 얼른 키보드를 두드린다. 포켓몬의 노랫말처럼, 자, 이제 시작이야.

어떤 것부터 시작할까 생각하다가, 그간 내 공부를 정리하는 것부터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간의 아이디어, 잡글, 그걸 뭉뚱그린 논문까지.


역사를 공부하면 항상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와 같은 말들을 통칭하는 단어다. 즉 시간을 편의상 나눈 표현들을 일컫는 말인데, 시간을 나누는 기준은 역사가들마다 다르다. 왜 그럴까?

공부 관심사가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서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난 공부를 이어가면서, 그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이건 논문 한두 편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걸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난제다. 삶을 바라보는 내 시야를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납득시키는 일이다. 참 곤란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시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작고하신 역사 연구자는 말씀하셨다, 역사 연구의 본질은 시대 구분에 있노라고. 생각도 많고 말도 많은 나는, 열심히 시대 구분이 역사 연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떠들고 다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미처 깊이 닿지 못하고 흩어져버린다는 느낌을 많이 받곤 한다. 책 바깥의 세상에서 시대 구분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다만 몇 사람에 불과하다.

1년에 논문을 몇 편 썼는지가 중요해진 세상, 시대 구분이라는 손에 잘 닿지 않는 주제는 다소 허황된 이야기로 여겨지는 것일까. 이 허황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지분간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논문 쓰는 방법도 이제 겨우 깨우쳐가는 초학 주제에 말이 많았다. 하여튼 난 아직 어린 마음에 현실보다는 이상을 좇고 있다라는 한심한 결론.


내가 생각하는 내 글들의 공통점은, 소외된 것들에 대한 공백을 메우는 일에 있다. 이럴진대 누가 내 글에 관심을 가져줄까.

관심이 중요한가, 반골 기질로 질문만 쏟아내며 살아왔던 시공간이 응축된 게 나다. 정답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시험 문제에도 동의를 못 했으니.

아니, 관심은 중요하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나가며 절실히 깨달은 것. 역사 연구란 결국 인간을 이해햐기 위한 것, 그러므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소외된 것들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중요하다는 내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전해야 한다.

역사 연구자들은 그렇게 대학원생 1평, 강사 2평, 교수급 3평 남짓의 골방에 앉아 삶을 걸고 글을 쓴다. 물론 특권이다. 나는 이 지식인층의 특권을 누리면서, 무대 뒷편에서 반쯤 가려진 모습으로 제 역할을 해내는 그 모든 삼류 조연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