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잡담 (3) 가끔 바둑을 보고 둔다
2026.2.1. 수정
바둑을 즐기지 않는 이라도 알게 모르게 바둑의 영향을 받곤 한다. 단적으로, 바둑에서의 용어는 우리의 언어에 스며있다. ‘승부수’, ‘꼼수 쓴다’, ‘패착이다’, ‘사활을 건다’ 등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들이다. 중고등학교 유명한 수학 참고서에는 ‘정석’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정치에서도 흔히 ‘갈라치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바둑에서 쓰이는 용어들을 찬찬히 보다보면, 세상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쓰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바둑의 확장성이 크다는 뜻일까? ‘바둑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는 말처럼, 그 안에는 넓은 통찰이 있는가 하면 냉혹한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바둑은 아버지께 배웠다. 너댓살 꼬맹이가 아버지 친우분의 초등학생 따님을 축으로 이겨보겠다고 애썼다. 초등학교 바둑반에 함께 했던, 학원에서 바둑을 배운 친구를 이겼다. 나와 더는 두지 않겠다는 지인과 친구의 말에, 더는 바둑에 파고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바둑 인공지능이 사람을 이겼다는 미증유의 소식을 들었다. 이럴수가. 오목 수준의 컴퓨터가 이제는 바둑으로 사람을 이길 수가 있구나. 바둑은 인간 지능의 상징과도 같았다. 구글은 아마 그 점에 착안하여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바둑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즘 유명한 바둑기사들도 찬찬히 살피게 되었다. 바둑을 두는 기풍도, 정석도 인공지능이 사람을 이긴 후 수없이 변화함을 보았다. 인공지능이 성장하면 사람도 성장하는가.
바둑계에 태풍을 몰고온 일은 이뿐 아니라,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도 있었다. 바둑은 상대와 함께 호흡하며 수담(手談)을 나누는 일인데 이제는 서로 잘 마주하지 않는다. 다만 컴퓨터로 원격 대국을 둘 뿐이다. 상대는 보이지 않고 반짝이는 화면과 딸깍이는 소리만 남는다.
대국을 마치고 대국장에 함께 남아 서로가 어떻게 두었는지 돌이켜 보는 일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바이러스는 서로를 멀리하게 한다. 집에 돌아가면 바둑 인공지능이라는 ‘정답’이 있다. 함께 오래 할 여유나 이유가 없다. 바둑에서 관계는 점점 흐릿해지고 편리만 뚜렷해진다.
지인과 친구와 바둑을 두고 나서 들었던 아쉬운 마음을 지금 다시 느낀다. 바둑 안에는 잔혹할 정도의 논리와 결단이 있었지만, 그 밖에는 사람이 있었다. 이렇게 보니 나는 바둑보다 사람이 좋았던 것 같다. 사람에게 ‘정답적인’ 삶이 어디 있는가. 각양의 삶은 그 자체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