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잡담 (20)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바둑을 보다가

바둑에는 ‘일감’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수로 생각되는 혹은 느껴지는 직감적인 수, 라는 뜻이다. 이건 논리라기보다는 감각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항상 ‘정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바둑 프로 9단의 일감과 나 같은 초보의 일감은 정답으로 향하는 과정으로 보아 현격한 차이가 있을 수밖엔 없겠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일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일감이 있어야 생각이 진행된다. 배고픈데? 뭘 먹지?, 에서 끝나면 배고픔은 해결되지 않는다.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을까? 라는 일감이 있어야, 아 오늘은 김치찌개 안 땡기는데, 치킨 먹고 싶은데, 라는 후속 생각이 이어지다가 결국 설렁탕을 먹으러 가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 아니면 바로 김치찌개를 먹고 점심 끝! 하거나. 즉 배고픔-김치찌개-치킨-설렁탕이든 배고픔-김치찌개이든 그 흐름은, 김치찌개라는 일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사유다.

데미스 허사비스 외 구글 일파가 만든 알파고 역시 그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는 보통명사가 된 알고리즘은 일감과 무관하지 않다. 윤이 127수 째의 검은색 돌을 두었다면, 알파고는 바둑판의 주요한 지점을 찍어서 일감을 마련한다. 그 일감에서부터 출발하여 다시 주요한 지점을 찍는다. 그 지점에서 다시 주요한 지점을 찍는다… 거의 바둑판을 가득 메울 정도로 찍어보고 나서야, 아 이 지점이 내가 이길 수 있는 최선이겠군? 하고 128수를 놓는다.

인간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단 몇십 초만에 엄청난 경우의 수를 찍어보는 컴퓨터를 무엇으로 당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소위 ‘인공지능’을 신봉하곤 한다. 아 벌써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순식간에 앞지를 수 있는 기초가 있는 게 아닌가! 시를 쓰는 인공지능,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 인간의 창의성을 보여줄 수 있는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벌써 활약하고 있지 않은가!

음, 아니다. 바둑을 두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현상이 아닌 그에 내재한 본질을 보면 사실 ‘인공지능’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은, 인간의 ‘지능’에 비해 정말 낮은 수준의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능과 알고리즘의 차이는 ‘간학문적 일감의 선별’에 있다.

컴퓨터가 체스를 두고 바둑을 두는 건 오래된 일이다. 그런데 체스의 경우는 바둑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왜? 경우의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체스판은 8칸x8칸=64칸이다. 더구나 움직일 수 있는 말이 정해져 있다. 그러면 바둑은? 19칸x19칸=361칸에, 돌을 자유롭게 둘 수 있다. 상상 이상의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러나 어쨌든 무한대의 경우는 아니지 않는가? 고작 361칸인데? 그러니,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지면 사실 바둑 실력도 당연히 따라잡힐 일이었다.

다만 알파고에 많은 사람이 주목했던 이유는, 바로 딥러닝이라는 ‘학습’ 능력과의 접목에 있었다. 이를테면 역사상 수많은 바둑 기보(바둑이 두어진 과정을 담은 기록)를 수집하여 알파고로 하여금 바둑을 둘 때 주요한 지점으로 여겨지는 ‘일감’을 찾도록 했다. 즉 사람이 컴퓨터에게 바둑 분야에서 ‘일감’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준 셈이다. 그러면서, 바둑판 위의 모든 지점을 찍으며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컴퓨터는, ‘일감’을 배우면서 줄어든 경우의 수만큼 더 빠르게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마찬가지이다. 컴퓨터는 기존 인간이 남겼던 수많은 시의 구조와 표현을 통해 시를 쓰는 ‘일감’을 배워 ‘시를 쓴다는 것’에 해당하는 경우의 수를 줄일 수 있었다. 그 줄어든 경우의 수만큼 더 빠르게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인공지능’이라 칭하는 것은, 인간이 컴퓨터에게 ‘경우의 수’를 줄여 준 결과 “어우, 이거 봐라, 인간의 생각처럼 비슷하게 뭘 할 줄 아네?” 정도의 수준을 가지게 된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바둑을 두다가, 야 이거 오목처럼 생겼는데? 오목이었으면 내가 이겼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건 알고리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영역에 있다. ‘간학문적 일감의 선별’이 가능한 인간은 언젠가는 진짜 ‘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