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노트 (4) 스승의 도리, 제자의 도리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잠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선생님들께서 슥 들어오셔서 우다다 말씀하시고 종이 울리면 나가시는 일련의 ‘출입 과정’이 그저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학생 앞에 서야 하는 때가 오니 그 출입 과정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인지, 예측불허의 순간들에 계속해서 노출되어 있는 그 상황이 얼마나 막막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나도 고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아버지께서 일러주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의 핵심, 결국 실력이었다. 실력이 무엇인가? 학습 내용을 달달 외워서 교실에서 달달 풀어내는 것이 실력인가? 물론 그렇다. 학생들에게 되도 않는 코미디를 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실력인가? 당연하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침묵을 통해 무겁게 만드는 것도 실력인가? 학생이 더 나은 삶의 양식을 갖게 하는 모든 것이 실력과 관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실력은, 나의 잘남에 비롯되는 것만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시선에서 출발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이름을 애써 외우고, 자주 가는 분식집과 즐겨하는 취미를 묻고, 그렇게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케이팝 아이돌과 게임을 활용한 수업을 구상했다. 저녁에 목이 쉬어 돌아오더라도 언제나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항상 정장 차림으로 출근했고, 수업에서는 상호존대를 했고, 바른 자세로 걷기 위해 매순간 나를 의식했다. 그들은 역사 수업에서는 내게 몇 가지 지식을 ‘들을’ 뿐이지만, 함께 하는 삶에서의 태도는 그들 경험 저변에 누적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을 얼마 전 뵈었다. 내 미진한 글을 보시고 여러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하셨다. 손수 여러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글로 출력하여 건네주셨다. 읽고, 또 읽고, 재삼 읽으며 부끄러운 한편으로 감사했다. 감사한 한편으로 기뻤다. 내 조잡한 글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내 엉뚱한 시선에 대한 따뜻한 이해를,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께서 갖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위안을 얻었다.

생애 대부분을 학생으로 살아온 나는, 누군가의 제자로서의 나는 어떤 자세를 갖고 있었는가. 거창한 보답을 바라실 것도 아니니 인사라도 제대로 드려야겠다. 나이 든 제자가 별다른 진척도 없이 마냥 글에 매달리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담아. 그 글은 길게 이어진 성벽에 놓인 작은 벽돌 하나, 다만 그 벽돌을 올곧게 놓으려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다는 선학들의 연구에 감사하는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미지의 공백에 무언가를 반듯하게 채워넣기 위해, 학문공동체에서의 그리고 우리 삶에서의 더 나은 지향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