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잡담 (14) 시스템과 안티시스템

역사교육학계에서 ‘1차 개념’과 ‘2차 개념’으로 불리는 용어는 각각 ‘실질지식’과 ‘절차지식’을 의미한다. 실질지식은 역사가들의 연구 결과로서 나온 지식이며, 절차지식은 그러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역사가들이 사용하는 사고의 ‘그물망’이다. 즉 학생들은 역사 수업에서 실질지식과 절차지식이 모두 담긴 학습내용을 계속해서 접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수업에서 절차지식 혹은 메타역사개념을 중심으로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① 우선 교수학습의 매개가 되는 교과서 서술에 메타역사개념이 등장하지 않고, ② 그러므로 교과서에도 없는 메타역사개념을 평가항목으로 삽입할 수가 없고, ③ 그러한 상황에서 교사가 메타역사개념을 수업 주제로 삼아 교수활동을 하더라도 학생들의 관심이 적어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는 2차 개념에 비해 1차 개념을 중심으로 한 교수학습활동이 우세하게 되었고, 이는 곧 현행 평가체계에 대한 순응 및 동조의 경향이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우리의 현재를 구성하는 권력관계에 맞서려는 의지의 발현”을 학생들이 체득할 수 있게 하는 역사교육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실현이 불가하다.

더구나 현재 우리의 학교는 기본적 체제상 규율과 통제를 통해 교육의 수동적 소비를 학생에게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의 인지적 측면에서의 성장을 역사교과를 통해 도모하고자 하는 시도는, 학생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닌 새로운 태도를 습득하는 과정을 강조해야 하는 안티시스템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푸코나 일리치의 입론에 바탕을 둔 기획을 교육현장에 구현하는 일은 다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메타인지’는 어떠한가? 메타인지는 대개의 경우 특정 과목의 것이 아닌 보편성과 동시성을 가진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즉 ‘인지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꼭 역사과가 아니라 다른 교과를 통해서도 충분히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인지능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메타인지가 글쓰기나 말하기 연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발달될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역사과에서 역사가들이 사용하는 사고의 그물망을 배우며 메타역사개념을 익혀야 할 이유는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1차 개념과 2차 개념, 그 사이 어느 지점엔가 있을 총괄 개념 등이 포함된 ‘회색지대’, 나는 이런 구분 자체가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끊이지 않는 모호성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역사 사실을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가령 역사 사실의 최소 단위 개념이라 한다면, 1차 개념에 가장 가까운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인과성이나 관계성 등으로 묶어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엔트로피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2차 개념의 조직망이 각 최소 단위 개념을 묶어내기 시작하고, 점차 무엇이 1차 개념에 가깝고 무엇이 2차 개념에 가까운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1차 개념과 2차 개념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 역시, 1차 개념에 가까운 ‘연회색지대’와 2차 개념에 가까운 ‘진회색지대’ 등의 스펙트럼으로 분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념간의 모호함은 중첩되어 무엇이 1차 개념이며 다른 무엇이 2차 개념이라고 정의하는 연구 자체에 형용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나는 1차/2차 개념의 구분과 그것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효율적으로 학습시킬 것인가에 대한 강조는 오히려 역사과의 특수성과 소격한 주장이라 생각한다. 현실적인 학교 교육체계에서 특별활동이 아닌 교과수업에서는 구현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역사과만의 독특한 개념간 구분 기준을 정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메타역사개념은 메타인지 교육의 한 부문으로 잠식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과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융합가능한 안티시스템의 적용’을 도모해야 하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나는 通說과 異說을 수업 내용에 도입하는 것이 그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통설은 즉 평가와 직결되는 ‘교과서적 정답’의 기반 내용이고, 이설은 메타역사개념의 학습을 위한 일종의 매개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는 내용인 것이다. 물론 아직 통설과 이설을 역사수업에 어떻게 구체화하여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 시도 자체가 총론에 등장하는 교육의 목적에 있어서 굉장한 역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교육에서 역사가 가진 多聲性을 안내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안티시스템의 공존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론이 아닌 현실 적용 방법에 대한 궁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