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잡담 (15) 선생님과 레벨업
얼마 전 선생님을 뵈었다. 말씀에 어린 따뜻함에 감사함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 마음에 걸맞는 삶을 나는 잘 만들어왔을까?
잘난듯이 많은 것을 내보였지만, 그건 결국 내가 그만큼 부족함이 많다는 뜻이다, 부족함이 많음을 가리려 애쓰는 일이다.
다만 한두가지라도 진득히 해내왔다면 그처럼 산만하게 분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 선생님 앞에 아직 난삽한 내가 부끄러웠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은 어렵다, 선택의 순간 그 바깥의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쉽게 돌아갈 수 없음이 두렵다, 그러다가 나를 잃는 건 아닐까.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철이 드는 게 아닌지, 아직 어린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공부도 게임도 잘 하고 싶고, 베이스기타도 잘 치고 싶고, VR기기도 막 다뤄보고 싶고, 학생들을 계속 즐겁게 가르쳐보고 싶고, 영상편집도 뚝딱뚝딱 해보고 싶고, 작곡도 해보고 싶고, 농구도 하고, 여행도 가고, 논문도 읽고, 글도 쓰고, 밥도 먹고!
온갖 것들을 다 하면서 살고 싶은데 어떡하지?
어떡하긴, 사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다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이미 충분히 있다.
그저 각 분야마다 레벨업에 필요한 소요 시간이 다를 뿐이다.
<작곡> 레벨1 = 3시간, 레벨2 = 10시간, 레벨3 = 50시간 …
<베이스기타> 레벨1 = 30분, 레벨2 = 80시간, 레벨3 = 1200시간 …
내가 어떤 분야에서 레벨을 얼마나 올리고 싶은지를 안다면, 그에 맞게 시간을 배분하면 된다.
다만 모든 분야를 마스터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게임에서조차, 치트를 쓰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치트코드를 입력한 게임 같은 삶을 누구나 꿈꾼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살펴서 하나씩 이루려 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나이든 꼬맹이는 시대를 잘 타고나 아직 이런 철 없는 생각만을 던지고 있다.
끝없는 압제 속에 출구 하나 없이 버텨내야 했던 그 준엄한 삶과 엄혹한 역사를 알아가는 일은 꽤 아픈 까닭에 이것저것 해보면서 피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그 역사가 나의 이 얕은 사유를 가능하게 만들었음을, 그 역사를 거쳐오고 공부하신 선생님을 마주하며 혼자 생각했다.
공부에 조금 더 진심을 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