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머리카락을 자르러 학교 안 미용실에 갔다.
세미 투블럭에 뒷머리는 상고식으로 해주세요.
좋았어, 이번에도 자연스러웠어.
옆머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앞머리는 넘기실 건가요?
…예?

난 염색도 파마도 장발도 삭발도 도통 머리를 꾸미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수십 년 커트 인생에 겪은 거라곤 고작,
전체 투블럭에 미용사의 친절로 뿌려진 헤어무스.
미용에 무지한 나로서는 커트 방법 하나에도 쩔쩔매곤 한다.
짧게 깎아 주세요, 한 지 한 달 정도 됐어요.

그러던 2020년 1월, 구세주는 말씀하셨다.
아, 손님, 앞으로 어디 가셨을 때 세미 투블럭에 뒷머리는 상고식으로 해달라고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요.
아, 구세주시여, 감사합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훌륭한 평범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앞머리와 옆머리로 애를 먹지만요, 제 삶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 학교만이 아니라 세상 어디서나 들려오는 단순한 말 한 마디가,
너무나 광활하여 척박한 우리 삶을 적신다.
그런 말 한 마디를 건네는 삶이란 어떤 것일지.